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필자는 동창회들에 나가지 않는다. 다들 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지칭하는 ‘망함’의 뜻은 ‘행복하지 않음’ 정도의 뜻으로 받아달라.

하지만, 경제불황으로 사업실패로 재정면에서 힘든 인생을 짊어지고 사는 중년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회증상은 우리 동창회들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힘든 친구들을 멀리한다는 필자의 심성이 도의적으로 고약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힘든 일을 나누는 것보다 남의 부탁까지 들어준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시대다. 그냥 간단히 말해, 친구라해서 돈 빌려주는 일이 이제 싫다.

우리는 80년대에 최루탄, 몽둥이 맞아가며 군부독재에 대들었던 세대다. 정의감, 의협심이 가득했고 사랑과 우정에 책임감 있었으며 경제활성보다는 민주주의가 나라를 살린다는 신념이 있어서, 새마을운동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박정희 신봉자들인 아버지들과 적잖은 괴리와 갈등이 있었다. 필자는 특히 광주태생으로 518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부친이 전남매일 신문사설로 잡혀가 매맞고 빼앗긴 기억이 평생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특유의 영웅주의가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게 갑질한다.

 

꼰대의 무의미한 과거회상을 늘어놓는 의도를 말하겠다. 우리는 실패했다. 세상은 이상과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고 정의감의 아이콘인 우리 세대도 생활이라는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학창시절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반미데모한 선봉장이었던 선배 하나는 먗년전 미국 이민만이 살 길이라며 나에게 이민 절차와 현지 생활을 물어본 적이 있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육하기 위해 야학을 오랜간 주도했던 동창 하나는 어린 여제자들에게 못된 짓하다가 징계당해 집에서 자칭 투쟁 겸 집필 중인 전직 대학교수시고. 우리는 변했다. 변했고 상했다. 변했고 상했고 썩었다. 끓는 피는 온데간데 없고 돈과 성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개돼지가 되어가고 있다.

 

 

 

내 동창 중 김기남이란 친구가 있다. 실명 올려도 된다니 올린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공장에 다녔다. 손톱은 언제나 검정색이었고 앞니도 하나 없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거리고 다녀 모자란 넘으로 치부했다.  우리는 대학에 갔고 그는 공장에 갔다. 대학 때 동창회를 하면 그에게 말 걸어주는 친구 하나 없었다. 우리는 시국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는 옆에서 그런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한 얘기만 듣다가 가끔 담배 사오는 역할까지 했었다.

우리가 40중반쯤 되어 그 친구들이 약 20년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는 김기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좋은 양복에, 좋은 자동차에, 우리 중 가장 동안 얼굴에, 새하얀 앞니가 나는 그가 누군지 한참을 못 알아보고 있었다. 게다가 연세대학 경영학과 만학졸업했다는 다른 친구의 귀뜸도 있었다. 기남은 우리 동창모임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해서 친구들의 쏟아지는 관심젖은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고 건네받는 술잔에 일찍부터 거나하게 취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연신 그 싱글거리는 얼굴은 예나저나 여전했다.

김기남은 대학을 못 가고 공장을 19세부터 다녔다. 공장문을 열고 닫는 일부터 자질구레 허드렛일 마다 않고 그야말로 에브리띵 인더 팩토리를 군대 빼고 10년이 넘게 했단다. 그 공장 사장이 부재 중이거나 와병 중일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믿들맨이 기남이었다. 이래저래 공장장이 되고 어쩌다 눈이 맞고 입이 맞아 사장 딸하고 교제를 시작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못다한 대입시험 공부도 다시 하게 되어 죽어라 병신처럼 과외에 돈쓰고 학교 다닌 나도 못가본 연세대에 덜커덕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은 제조주물공장 7개를 운영하는 기업체 사장님이시다. 지금 그에게 돈 꾸려 담배셔틀 해줄 운동권 출신 동창들이 많다.

 

 

 

그는 참았다. 그리고 그 참는 기간이 즐거웠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공장문을 열고, 지겹고 끝없는 일을 싱글거리고 했을 것이며, 같은 또래에게도 희생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나 친절과 감동으로 다가갔으리라. 누구든 그를 좋아했으리라. 그는 여전했으니까. 전혀 변하지 않으니까.

사람이 변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게 하루에도 열두번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개쪽팔린 모양새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냉탕과 온탕을 자주 왔다갔다 하는 이유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조그마한 고생도 못 참고 금세 계획을 바꾸며 이유와 변명을 다는 사람은 돈도 성공도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너는 예외인 것 같은 생각을 하나? 네 은행 잔고를 봐라.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그 이유는 단지 매사 못 참고 마음 바꿔서 그런 게 아닌가?

참자. 이겨내자. 변심하지 말자.
초심 그대로 길 하나 웃으면서 뚜벅뚜벅 걷는 것이 가장 빠르다.

내 이름은 심진섭이다. 나하고 같이 영어공부 할 사람 더 만나자고 이런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지만, 나도 내 생각, 내 경험, 내 믿음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 내 글 기다린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놀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