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승의 이성엽 선수를 존경한다.

영어를 가르치다보면 여러 고장 출신들의 학생들을 만난다. 내가 이것을 신경쓰는 이유는 우리가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중 하나인 억양의 문제 때문이다. 내 고향인 전라도에서 올라온 친구들도, 교육열이 서울을 넘나드는 경상도 친구들도, 그리고 비교적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도 강원도 친구들도…….특이한 억양들이 있고 또 그것이 영어스피킹에 크고 작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내 친구 중 김대성이라고 하는 대구 출신이 하나 있다. 자신의 이름을 한번도 ‘김대성’이라고 한 적이 없다. 내 귀에 그는 그 자신을 ‘김대승’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부인한다. 그는 죽어도 김대성이라 발음했다 말한다. 우긴다. 동사무소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김대승’이라 외쳤다가 공무원과 실랭이를 벌인 적도 있었다. 나도 가끔 그를 ‘김대승’이라 부르는데 희한하게도 그는 그때마다 나에게 놀리지말라 화를 낸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 있다. 그의 고향을 대표하는 (그의 음성으로 들어보자) ‘삼승 라이온주의 이성엽’ 선수다. 이 선수가 한국을 대표한 선수라 다른 프로야구팀의 팬들마저 인정하기 시작한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리 큰 체격이 아님에도 한국신기록 40개, 아시아기록 54개를 때려 넘긴 게 세월이 그리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은퇴하는 날까지 담장을 넘기더라. 괴물이다.

 

 

이승엽 선수가 태어난 대구는 욕심이 정말 많은 도시다. 이 곳 출신의 내 지인들은 거의 열정적으로 산다. 어투는 다소 거칠고 성향은 살짝 공격적이지만, 대통령 외 인물들 여럿 배출하면서 이 나라 어쨋거나 잘 이끌어왔다. 영어 선생으로서 발음 안 되거나 억양 다듬을 영어 부분이 꽤 많아서 대구에 가서 살면서 어린애들 영어학습에 참여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오늘 필자의 글이 갈 지 자로 흘러가는 듯. 오늘의 글 포인트를 잡겠다.

 

일요일 밤 SBS 특집으로 며칠 전 은퇴한 이승엽 선수의 일대기를 보았다. 다음날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일요일 밤에 나를 포함한 여러 시청자들의 머리를 또렷하게 그리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돈을 벌었을 테고 아름다운 가족을 가진 세상 행운아기에 부러움의 대상임은 확실하나, 나는 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내 인생살이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곧추 잡는 기회를 잡았다. 그와 함께 동시대를 산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 되었다. 그가 쌓은 여러가지가 외려 모자란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든 시련은 온다. 넘어질 일 많이 생긴다. 그러나 이 순간, 엎어져서 엉엉 울고만 있느냐, 드러누워 남탓만 하고 사느냐, 웃으며 또 하나 경험했다며 끙차 일어나느냐 가 큰 차이를 만든다. 비록 같은 시간,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지만, 이 순간의 태도가 시간이 흘러 그들을 전혀 다른 위치에 가져가 놓았다. 이승엽은 저 쪽으로 갔고, 다른 땡깡쟁이들은 반대 쪽으로 갔다.

 


1등을 하기 위해 노력과 끈기도 필요하지만 못지 않게 긍정적인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필자는 피치 못하게 여러 각종 진상들 만나고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게 나의 불만거리였고 은퇴를 게획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들을 통해 점점 수양 쌓아가고 내공 드넓어진 면도 존재한다. 또 만나고 더 상대하면 나는 더 단단해지겠지.

 

세상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 거 안다. 발을 동동 구르면 구를수록 늪속으로 더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이승엽 선수가 전해주는 것은 그 발버둥이 없으면 맨날 그 자리일테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은 인생 퇴화난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나 역시 죽어라 더 달려보겠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만 하겠다. 그러면 이 긴 터널 끝 빛을 보겠지.

 

 

여러분 인생도 건투를 빈다. 우리 다같이 좋은 인생 만들어보자. 긍정적으로 살자.

이승엽 선수께 고맙다.